(=ⓛㅅⓛ=) Apple-cat's cosy room

쿨하게 사는 법

What I've got feelings 2003. 10. 1. 22:14 by applecat

쿨하게 사는 법 (psymetheus.blogspot.com)

‘쿨하게~ 가슴은 뜨겁게, 어차피 내멋대로 사는 세상 쿨하게~’
요즘 인기있는 한 드라마의 주제가다. 이 노래를 조금 더 들어보자.
‘눈치만 보며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말지 그렇게 못살지~,
그런 나원래 그렇고 그런 너를 보며~ 너와는 달라 폼나게 살고 싶을뿐~’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노래를 듣다보면, 과연 ‘쿨하게 사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다들 쿨하기를 열망하지만 진짜 쿨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 않은가. 얼마전 방송되었던 ‘장미의 전쟁’ 특집편을 보면 ‘쿨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그 프로그램에서 한 남학생이 “전 쿨한 사람을 좋아해요”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여자 연예인이 자신을 쿨하다고 생각했던 웃긴 일화가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무명 시인이었던 한 국어 선생님은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를 읽어주며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학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그녀가 헤어지자고 할 때 자신은 깨끗이, 즉 쿨하게 물러났다는 것이다. 그 시구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뒤돌아섰기에 그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는 그 선생님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렇지. 다른 것은 몰라도 연애만큼은 쿨하게 해야지.’라는 다짐도 남몰래 했다. 하지만 몇번 안되는 연애경험을 쌓으며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헤어진 연인에게 집착하고, 헤어진 후에도 그의 이메일을 열어본다거나 그의 음성을 듣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미련덩어리’라는 말로 나 자신을 비하하기도 했다.

‘섹스 & 시티’라는 미국 시트콤을 보면 주인공 켈리가 자신이 2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 빅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와 헤어진지 6개월도 채 안되 그에게는 새 여자친구가 생겼고, 그것을 알게된 캘리는 ‘해리와 샐리’의 그네들처럼 자신들도 친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의 첫만남. 그 자리에서 캘리는 빅이 새 여자친구와 약혼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자리를 뛰쳐 나간다.

며칠 뒤 캘리는 빅의 약혼식 초대장을 받는다. 대망의 약혼식날, 고민끝에 그녀는 이전에 본 한 영화에서처럼 “Your girl is lovely(약혼녀가 참 이쁘네요)”라는 말을 빅에게 하며 쿨하게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빅과 마주친 순간 툭 튀어나온 말은 “Why it wasn’t me?(왜 저는 안되죠?)”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약혼녀가 보는 앞에서 심술궂게 빅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빅 앞에서 그녀는 끝내 “Your girl is lovely”라는 말을 하며 돌아서지만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주인공 캘리는 미국의 유망한 칼럼리스트이고 그 누구보다도 쿨하게 사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여자이다. 하지만 ‘너없이도 잘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헤어진 연인에게 친구로 지내자는 마음에도 없는 제의를 한 그녀보다, 빅의 여자친구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실수를 연발하던 그녀의 모습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또, 헤어진 연인의 약혼식장 앞에서 무리하게 쿨한 이야기를 하려는 그녀보다, 약혼녀 앞에서 빅의 얼굴을 쓰다듬는 심술궂은 그녀가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시트콤을 보며 ‘쿨하게 산다’는 것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인주의적으로 아니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기를 갈망하는 우리의 ‘쿨족’이 사실은 단순히 ‘폼나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는 함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우리가 거울속에서 늘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듯이 말이다. 실제 부스스한 모습은 감춘채 남에게는 거울속의 단정한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쿨족’보다 자신의 모든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쿨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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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의 충고 - 2만달러, 그 함의에 대하여 (psymetheus.blogspot.com)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농장(조지 오웰)’의 말, 복서입니다. 저희 ‘동물동장’은 동물 스스로가 운영하는 농장입니다. 15년 전쯤 저희가 혁명을 일으켜 주인을 몰아냈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동물들 중에 가장 똑똑하다고 자찬하는 돼지들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희에게 ‘풍차’를 건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풍차를 건립하면 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농장을 밝힐 수 있대요. 그리고 그 전기가 기계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풍차를 건립한 뒤에는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설탕이 들어간 여물을 먹을 수도 있대요.

저희 동물들은 희망에 찼습니다. 할아버지 당나귀 벤자민 씨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쯪쯔….했지만, ‘설탕이 들어간 여물’과 ‘일할 필요가 없다’는 돼지들의 말에 아무도 벤자민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태생이 말인지라 원체 일을 좋아하죠. ‘열심히 일하자’가 제 신조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사실 풍차 건설은 제게 큰 무리였습니다. 하지만 몇년 후 정년이 되면 연금을 받아 제 애인 클로버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풍차 만들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습니다. 친한 닭에게 살짝 부탁해 앞으로는 한 시간 일찍 깨워달라고 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큰 돌을 위로 나를 때면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클로버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자’를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풍차가 간밤의 폭풍우 때문에 쓰러졌습니다. 저희들은 절망감에 빠졌죠. 모두 풍차 만들기에만 집중해 곡식 등의 생산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생산한 것들도 모두 돼지들의 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육체 노동보다 머리 노동이 더 힘들기 때문’이란 것이 그들의 이유였지요. 돼지들은 저희에게 다시 풍차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1년 후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에 저희들은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ㅅ브니다. 저는 앞으로 두시간 일찍 일어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잃사자’는 이제 저만의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고도니 일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자’를 주문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몇 달 전, 저희는 드디어 ‘풍차’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풍차로는 전기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돼지들은 그래도 만들었으니 보리를 빻는데에 이 풍차를 사용하게ㅆ다고 했습니다. 보리요? 동물들 중 누가 보리를 먹냐구요 보리를 먹는 동물은 없습니다. 단지 돼지들의 술을 위한 것이지요. 저의 정년은 이미 2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일을 하지마라’라던가 ‘연금을 주게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은 연금을 달라고 할 분위기도 아닙니다. 농장안에서 여물은 커녕 지푸라기 하나도 볼 수 없거든요. 단지 돼지들의 집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로 허기를 채우는 실정입니다.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저의 이야기를 한 것은 여러분께 ‘풍차’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얼마전 새들로부터 여러분의 나라, ‘빨리 빨리’에서도 ‘2만달러’라는 풍차를 짓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그 풍차가 완성된다며느 그래서 여러분이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은 없겠죠. 하지만 여러분, 그 풍차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풍차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저의 풍차처럼 폭풍우가 불평 쉽게 날아가는 그런 풍차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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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분할 다중접속(CDMA)의 의미 (psymetheus.blogspot.com)

‘빙탄불상용’이란 말이 있다. 얼음과 숯은 그 속성이 달라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를 인간 세계에 대입하면, 사고방식이나 추구하는 목표, 즉 코드가 다른 사람끼리는 서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얼음과 숯이 많다. 이 덕분에 남남갈등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예전부터 뿌리 깊었던 세대간, 지역간 갈등과 이념의 갈등, 빈부격차 등이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에 더해 NEIS, CCTV, 새만금, 핵 폐기물 처리장 등을 둘러싼 사안별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져 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서로의 주장만 옳다고 하고, 남의 주장에는 귀를 귀울이지 않는다. 이 점은 특히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더욱 확연히 알 수 있다. 밤을 새워가며 ‘끝장’을 보게ㅆ다는 각오로 토론을 해도 늘 결론은 없다. 그냥 ‘코드가 너무 맞지 않아서….’라는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코드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무선 통신 기술 중 하나인 CDMA가 각광받는 이유는 ‘대역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다. 이는 전송하려는 신호의 대역폭보다 훨씬 넓은 대역폭으로 신호를 확산시켜 전송하는 것으로 그 전력밀도가 낮으므로 우수한 통화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도 사고의 폭을 넓혀 다른 코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 CF처럼, 아이가 엄마의 옷에 케첩을 뿌렸을 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재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과 이해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빙탄’의 모체인 물과 불. 우리는 그 둘이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ㄴ 분수 위에 전기를 이용해 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수조 위에 촛불을 띄울 수도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 장면, 분위기를 연출해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이는 코드가 맞지 않느 사람들끼리도 화합할 수 있다는 작은 메시지이다. 자신의 코드(code, cord)를 남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코드 분할 다중 접속으로 화합의 코드(Chord)를 연주해야 한다.

TAG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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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은 고급스럽다? (psymetheus.blogspot.com)

(싸이 낭중지추 게시판에도 이 글을 올렸당. 영화 장화홍련 개봉당시 끄적인 글)

얼마전 정연이와 장화홍련을 봤다.(도서관에서 밍기적 거리다가 끝내….)
‘한국적 공포영화’라 해서 기대를 참 많이 했는데 역쉬 기대에 못미치더군. (무섭기는 짱 무서웠지만…. 터미네이터와 여고괴담 보고 경기 일으킨 전력이 있는지라 내가 하는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장화홍련에 관해 몇가지 끄적거려본다.

1. 장화홍련의 스토리?
스토리 전반에 맥거핀의 남용으로 실제 이야기 전개가 부드럽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가 있지만 우선 생략.(너무 길어짐)

2. 공포영화들의 집합?
디아더스의 외딴집 이미지 차용, 니콜 키드만 이미지 차용.(외딴집 이미지 차용은 가능하다 생각하나, 엄마의 헤어, 의상 등이 니콜 키드만을 너무 따라한 것 같다.)
식스센스의 반전. 안타까운 일이지만 식스센스 이후로 관객들은 왠만한 반전에 놀라지 않는다.
링의 귀신.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3. 장화홍련에서 여성. 그리고 계모?
가정비극인 ‘장화, 홍련’의 원죄는 침묵하는 아버지에 있다. 지금은 계모가 된 젊은 여성과의 불륜, 그로 인한 아내의 자살, 거기서 비롯된 또 다른 비극의 시작 등 모든 사건의 핵심에 아버지가 위치되어 있지만, ‘장화, 홍련’ 속에서 아버지는 침묵하거나 사건을 방조한다. (엄마의 대사 중 “왜? 아빠한테 말해봐. 너희 아빠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줄 아니?) 사실상의 가해자인 남성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들끼리의 반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여전히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계모는 딸들에게 앙심을 품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전근대적 사고를 다시 한번 주입시킨다.

4. 상징과 대비
꽃의 상징. 일상적으로 꽃은 우리에게 화려함, 축복, 추모의 의미가 담겨있지만, 이 영화에서 꽃은 존재와 소멸 더 나아가 공포를 조장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이는 일상적 상징을 변형하여 사용한 것으로써 문학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전반에 나타난 붉은 색과 흰 색의 대비. 이는 아이들이 생리를 하는 장면에서 극대화 된다. 생리는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복선이고, 피로 대변되는 공포가 아이의 하얀 잠옷에 물들어 갈때 공포는 극에 달한다.

5. 이 영화에서의 진짜 공포는?
이 영화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을 많이 한다. 보통 영화들은 귀신이 튀어나옴으로써 무서움을 조장한다면, 이 영화는 느린 손짓, 걷는 발 등을 클로즈업 함으로써 공포를 조장한다.(진짜 무서움)
하지만, 철학적 의미에서 이 영화가 말하는 진짜 공포는 바로 “잊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잊혀지지 않고 머리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철학적 공포의 형상화가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전반적으로 한이나 사회적 공포를 그리는데 치중했다면, 이 영화는 나름대로 철학적 의미의 공포를 그리려고 시도한 것 같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6. 장화홍련?
장화홍련이라는 고전에서 이 영화가 차용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계모와 딸의 반목이라는 전근대적 사고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극에서 우리나라의 고전적 정서(소복 및 귀신을 기대한 것은 아님, 후훗~), 우리나라 특유의 공포의 정체를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봤는데 그렇지 않아 조금 실망이다.

7. 장화홍련은 고급스럽다?
어떤 사람(유명인이나 이름 모름)이 이야기했다. 이 영화는 고급스럽다고….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사람의 말처럼 고급스러운가?
고급스러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고급스럽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스토리 전개나 작품의 소재 설정 등은 맘에 들지 않지만(매우 주관적 ^^;) 상징의 변용과 철학적 공포의 시도 등은 좋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나는대로 몇마디 써보았다.

TA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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