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Apple-cat's cosy room

드라마 [떨리는 가슴]을 꾸준히 본 것은 아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봤다. 사실 배종옥·김창완·배두나 등의 인물 구성이 너무 뻔해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터였다. 만약 여기에 윤여정이나 고두심이 등장했다면 안봤을 것이다. (왠지 좋은 배우들만 나오는 드라마는 보기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다. 반전 드라마에서 ‘반전’을 너무 강조하면 반전의 효과가 반감되듯 말이다. - 음.. 적절한 비유인가 ; )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에피소드 ‘기쁨’(하리수 출연) 부터다. 물론 여기서 불만은 있었다. ‘십자수를 놓는다’는 등의 행위가 ‘여성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쓰인다는 것이 좀 불만이었다. (음.. 넘 복잡하게 들어가지 말자)

그리고 내 가슴을 완전히 떨리게 만든 것은 에피소드 ‘바람’(김창완과 최강희 출연) 이다. 둘 다 ‘어떠한 끌림’ 속에서 갈등하는 것이 잘 묘사돼있다. 살면서 그런 일 한번 없을까…

그 드라마 속에서 난 김창완 부인인 배종옥의 입장이 돼보았다가, 바람 아닌 바람에 설레여하는 김창완 입장이 돼보았다가, 자기와 비슷한 한 남자를 만나 다시한번 사랑을 하고파하는 최강희 입장이 돼보았다. 사실 내가 김창완이나 최강희 입장이었을 때는 은근히 기분도 좋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배종옥의 입장이었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나와 인생을 함께 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에게 떨려한다면 내 기분은.. 분명 좋지 않을 것이다. 김창완이 바람을 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배종옥은 어렸을 때 자기를 좋아했던 한 초등학교 동창(男·미용사)을 찾아가 머리를 감겨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난 왜 네가 내 머리를 감기는데 하나도 안떨리니?” 이 장면에서 너무 슬펐다. ㅠ.ㅠ

그리고 배종옥은 그 동창과 밥을 먹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 “야 너 어렸을 때 나 좋아했다는거 맞니?” “어” “근데 왜 지금은 안좋아하니?” 뭔가 낌새를 챘는지 그 동창이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친구하자. 네가 남편 때문에 힘들 때 같이 욕해줄 사람 있어야 할 것 아냐. 그 사람이 꼭 여자란 법 있어?”

이 부분에서 탁(!) 무릎을 쳤다. 맞다. 내가 결혼해서 힘들 때 남편을 같이 욕해줄 친구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게 그렇듯이 내 남편에게도 그런 사람은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떨린다’는 것은 좀 슬프지만 그래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될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기란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내가 최고로 떨렸던 부분은 산울림의 ‘너의 의미’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였다. 김창완이 최강희와 좋아라할 때 BGM으로 깔렸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배종옥의 ‘외출’편이 방송됐는데, 그때 BGM으로 조동진의 ‘제비꽃’이 깔렸다.

예전에 산울림 노래(나의 마음은 황무지,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를 조금 좋아했어서인지 감흥이 더 오는 것 같다.

이번주면 이 드라마 끝나는데… 안타까울 것 같다. 이전에 못본건 인터넷으로 봐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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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여우의 사랑?

Girl's talk 2005. 4. 15. 21:45 by applecat

한마디로 명쾌하다.

그리스로마 신화인가.. 플라톤 책에서던가…
예전에는 남녀, 남남, 여여 등 두명이 한몸에 있었는데, 제우스 신이 인간에게 화가 나서 그를 반으로 갈라버렸다고 했다. 때문에 여&남의 성별이 생긴 것이란다. 또 그때 남자끼리 짝이었던 사람, 여자끼리 짝이었던 사람은 각각 남자, 여자 등 자신과 동성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우 비과학적인 말이지만, 어렸을 때 그 글을 읽고 나서 ‘아.. 동성연애자가 별로 특이(!)한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춘기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난 혹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닐까’ 고민해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여고시절 선배 언니(약간 보이쉬)들을 쫒아다니는 애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남자애들이 훨씬 더 멋있어 보였으니까. 정신적으로는 여자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육체적으로는… (엄연하게 바이? ㅎㅎ 끙…)

정희진 칼럼(아래)을 보고 명쾌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의 주장 혹은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이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섹스 하는 것이 ‘정상’이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라는 부분이 압권이다.

가끔 여자친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남자친구(혹은 남편)는 어쩌구 저쩌구해서 넘 안맞아. 차라리 너랑 같이 사는게 더 좋을텐데…” 근데 정작 여자랑 같이 살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남자친구보다 여자친구와 더 잘 맞는다면 여자랑 결혼해야하는게 아닐까? 나도 성정체성을 다시 고민해봐야하는 것은 아닐까?

아악! 갑자기 혼란스럽다. 나의 강점은 Zero based thinking 이지만, 가끔 이렇게 하나를 원점에서 생각하다보면 이상한 결론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ㅠ.ㅠ

어쨌든 칼럼의 요지는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경계선을 누가 정하느냐가 진짜 문제라는 것. 비단 이것이 ‘동성애’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이때 나는 ‘어디에 경계선을 두느냐’를 고민해야겠지.

며칠 전, 내 글의 ‘팬’이라는 독자의 이 메일을 받았는데, 마지막 구절이 놀라웠다. “그렇지만 동성애까지도 허용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동성애를 허용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나 흑인, 장애인 모두 누군가 ‘찬성’하지 않아도 세상 안에 살아가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누군가의 ‘동의’와 ‘허락’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권 운동가 한채윤의 지적처럼, 가부장제 사회의 주장 혹은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이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섹스 하는 것이 ‘정상’이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이나 친밀성이 공감과 연민에 근거한다면, 비슷한 경험과 조건에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일, 여성의 오르가즘이 20분이고 남성은 5분이라면, 20분은 20분끼리 5분은 5분끼리 섹스 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 아닐까? 그러므로, 전혀 다른 세계 즉, 극도로 성(차)별화 된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섹스 트러블은 필연적일 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냐 이성애냐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누가 정하는가가 진짜 문제(질문)거리다. 또한, 똑같은 인간을 다른 종(늑대, 여우…)으로 분류하여, 다르게 취급하는 성별 제도가 앞에 말한 모든 문제들의 근원일지 모른다.

- 한겨레 정희진 칼럼 ‘늑대와 여우의 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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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 식사 후기

Day log 2004. 12. 21. 21:41 by applecat

‘처녀들의 저녁식사 1′ 기억나세요?

며칠전 이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요즘 결혼식이 많았기에 이 친구들을 자연스레 자주 봤지요.

근데 저번주에는 약간 송년회 분위기로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후기를 올립니다.

# 친구 A

내가 존경하는 선수인 그녀.

역시 STAY 하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은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현재의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예전 남자친구에게 대쉬, 또 대쉬 중입니다.

(현재 남자친구가 결혼상대자로서 매우 조건이 좋긴 하지만, 결국엔 그 전 남자친구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거죠.)

하지만, A의 예전 남자친구는 아직 고민중인가봅니다. 한번 닫혔던 마음이 또 열리기란 쉽지 않죠.

A는 “사람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며 후회중입니다.

서로 만날 때는 몰랐는데, 헤어지고나니 ‘진짜 그 사람을 사랑했구나’라는 것을 알게됐대요.

그 둘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 친구 B

B의 남자는 아직 경제력이 없습니다.

회사에서 월급이 1년 넘게 안나오고있어요… ㅠ,ㅜ

그래도 B는 내년 1월 결혼을 합니다.

“사.랑.의 힘으로!” ^^;

# 친구 C

C의 남자친구는 변리사 2차 시험에 떨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매우 어리기 때문에 내년에 잘 보면 되죠 뭐.

그리고 C는 지난 12월 5일 임용고시를 봤습니다.

국가 유공자가 워낙 많아서 시험 결과는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래도 홧팅!

저희보다 한살 많다며 언니 노릇하던 C는 내년에 결혼할 계획이랍니다~

따져보니 저희가 만나온 것이 이제 8년째 들어갑니다.

고등학교 갓졸업한 때부터 지금까지… 에혀.. 지겨워랑~ ㅎㅎㅎ

(원래 같이 만나던 친구 D가 있었는데, 결혼한 후에는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ㅡㅡ;)

정말 이상한 것이…

사실 다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데도, 얼굴에 늘 웃음꽃입니다. ^^

이것 역시 천기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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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그리고 100%의 연인

Girl's talk 2004. 11. 27. 21:39 by applecat

2004년 11월 26일 날씨 : 첫눈

사무실에서 우울한 기분으로 첫눈을 맞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는다.

대학 동기의 엠에센 아이디가 [사랑해]로 바뀌었다. 이놈이 첫눈을 타나…

조금 전에 오랜만에 싸이질을 했다.

소개팅을 하면 블로그나 싸이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블로그를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다.

뭐.. ‘나’를 먼저 알려주기 전에 ‘그’를 먼저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지…

하지만, 내 성이 특이해서 싸이를 숨길 수는 없을 것같아,

싸이를 소개팅용으로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ㅡㅡ;

사실 꼭 소개팅용이라기 보다는, 그냥 대외용이다.

나를 조금 더 알고 싶어 하는 이들, 혹은 “지은이가 요즘 뭐하나” 궁금해 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어차피 퍼온 글들밖에 안들어갈테지만, 그래도…

싸이질을 하다가, 선배 싸이에서 좋은 글을 발견했다.

첫눈 온 날 이 글을 읽으니, 설렘이 더해가는 기분이다.

나도 이 글에서처럼 언젠가 [100%의 남자아이]를 만날 수 있겠지?

마음에 안맞는 사람을 억지로 만나려는 노력도 이젠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도 되고… 사실… 너무 힘들다.

외로운 마음에 억지 만남을 이어갔지만, 이 글을 읽고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언젠가 [100%의 남자아이]를 만나 happily ever after할테니까!

아무래도 나도 [첫 눈]을 타나보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 살에 가까울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쁜 여자아이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식사하는 여자아이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 식의.

나에게도 몰론 그런 기호는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의 코 모양에 반해 넋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유형화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코가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코가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뿐이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흠, 미인이었어?” 라고 그가 묻는다
“아니야, 그렇진 않아.”
“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구.”
“이상한 일이군.”
“이상한 일이야.”
“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을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야.”
“하긴 뭘 해. 그냥 엇갈렸을 뿐이야.”

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어딘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디 앨런의 영화라도 보며, 호텔 바에 들러 칵테일이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 뒤에 그녀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벌서15미터 가량으로 좁혀졌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단 30분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보험 권유 같지 않은가.

“미안합니다. 이 근처에 혹시 24시간 영업 세탁소가 없는지요?” 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손에 세탁물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누가 그런 대사를 신용하겠는가? 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입니다.” 아니, 틀렸어. 그녀는 아마도 이런 대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믿어 준다 해도, 그녀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퍼센트의 남자는 아닌 걸요, 죄송하지만” 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 쇼크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서른 두 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꽃가게 앞에서, 나는 그녀와 엇갈리게 된다. 따스하고 조그마한 공기덩어리가 피부에 와 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언저리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풍기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흰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아직 우표를 붙이지 않은 흰 사각 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녀의 눈이 졸린 듯한 것으로 봐서, 어쩌면 하룻밤동안 그것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각 봉투 속에는 그녀에 관한 비밀이 전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대사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야” 하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 속을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 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구. 알겠니?”
“응, 알았어.”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의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 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 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H.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 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 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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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들의 이해하기 힘든 뉴스링크 방식’이라… (미디어오늘 기사 - but 링크 깨짐 )

나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실, 경향 사이트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언바세바 사이트 좌측의 [경향 뉴스]란의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기사가 나와야하는데, 기사가 나오지 않고, 경향 뉴스 메인 페이지로 이동한다. ‘광고가 보여야 하기 때문’ 혹은 ‘페이지뷰’ 때문일 것이다. 뎁스를 길게하면 페이지뷰가 더 나오니깐. (물론 네티즌이 그 기사를 찾다가 포기하는 경우는 계산하지 않는다. ㅡㅡ;)

더 문제는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제목에 변형을 주어 네티즌 입장에서는 더욱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제목과 최대한 ‘가깝게’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쨌든 ‘변형’은 변형인 것이다. 페이지뷰/광고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기본적인 웹 ‘서비스’에 반하고 있지는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는 저널리즘에도 반한다고 생각한다. 알권리를 ‘최대한’ 충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페이지뷰]와 [서비스] 둘 다 충족시키는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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